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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아몬드-손원평 ; "서로를 향한 구원"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공감과 나눔, 그리고 구원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서로를 향한 구원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해와 공감이라는 명목으로 그 사람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윤재의 엄마는 윤재에게 '튀지 말라'고 한다.

그건 윤재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다. 평범하게 살도록 하는 것.

할멈에게 윤재는 '예쁜 괴물'이다.

이것 또한 윤재에 대한 할멈의 사랑이다.

심박사에게 윤재는 '보호해야할 아이'다.

이것도 윤재에 대한 심박사의 관심이자 사랑이다.


곤이에게 윤재는 '로봇'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며 '공감을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이다.

이건 윤재에게 향하는 곤이의 사랑이다.

도라에게 윤재는 '평범한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다.

그리고 '심장이 뛰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윤재에게 '이해해야 할 대상'이며,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윤재에게 '필요한 일'이지만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고 솔직한 윤재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 소설 속 이야기가 무섭다고 느꼈다.

하지만 곤이를 만나고, 심박사를 만나고, 도라를 만나면서 윤재에게는 '마음'이 생긴다.

생각해 보기도 전에 대답이 먼저 나와 버리기도 한다.


심박사는 윤재에게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가르쳐주고, 도라는 윤재에게 심장이 뛰는 이유를 느끼게 한다.

곤이는 윤재에게 마음을, 타인에 대한 관심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윤재는 곤이에게 문제아, 관심이 필요한 아이가 아닌 오롯한 '곤'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한 관심을 전달한다.

곤이와 윤재에 관계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고 모순되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두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관계이다.

나를 '나'로 봐줄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리고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도 꽤 자주 그 수식어 속에 한 사람을 가두기도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짧은 수식어로 하나의 인격체를 표현할 수 있을까.

만약 곤과 도라가 윤재를 향한 많은 수식어 속에서 윤재를 이해하려고 했다면,

만약 곤이의 아몬드가 더 커서 곤이에게 붙여놓은 수식어 속에서 곤이를 이해하려고 했다면,

윤재는 눈물을 흘리지도, 도라는 꿈을 찾지도, 곤이는 진정으로 새 삶을 얻지도 못했겠지.


다른 수식어를 배제하고 온전히 타인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내가 그려질 수 있다는 것,

그 사람이 길을 만들어 나가는데 내가 길을 닦아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지금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의미있는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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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정하는 소설 '아가미'와 분위기도 비슷하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동일해서 더 먹먹하게 읽었다.

두 책 모두 관계 맺음과 이해를 그려나간 책이기 때문에

아몬드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아가미의 곤과 강하가 생각났다.


특히 아가미의 마지막 부분과 아몬드의 마지막 부분은

316 - 하얀거짓들을 들으며 읽기를 추천한다.